12월이 끝나는 마당에 "Sell by 12/10/2005"라고 찍힌 두부를 냉장고 구석에서 발견하는 건 그닥 즐거운 일이 아니다. 평소 같으면 별 미련 없이 휴지통으로 들어갈 녀석이었는데, 보글거리고 눈앞에서 끓고 있는 김치찌개는 간절히 두부를 원하고 있어서 한 번 기회를 줘 보기로 했다. 칼로 포장을 오려내고, 냄새를 맡아는데 생각보다 싱싱하다. 구석을 살짝 깨물어 맛보아도 생각보다 고소할 뿐 시큼한 맛은 없다. 잠시동안 두부가 예상 수명보다 20일을 더 냉장고에서 보내면 어떤 일을 겪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조용히 두부를 썰어서 간절한 김치찌개에 넣어주었다. 새콤달콤한 김치찌개에 두부는 살을 섞었고, 룸메이트형은 맛나게 밥을 두 그릇이나 비벼서 먹어주셨다.
"Sell by 02/17/2006"
다음 생일이면 만으로 서른이 되는 나한테 붙은 유통기한 표시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년월일을 묻고, 나이를 계산하고, 유통기한을 표시해버린다. 하지만, 그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포장을 뜯고, 냄새를 맡고, 내 맛을 볼까? 날 알까? 아직은 유통기한은 안지났으니 괜찮아... 하는 사람들의 말이 그닥 위안이 되는 건 아니다 (곧 유통기한은 지나니까). 그보다는 냉장고에 온전히 단단한 비닐포장에 싸여 있는 나를 포장 뜯고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냉장고에서 구원해낸 두부처럼, 내 부드러운 살로 감싸줄텐데 말이다. 그리고, 나도 유통기한 표시는 덜 믿어야 겠다.
잘 끓여낸 김치찌개 속에 두부가 무척 자랑스러운 아침이었다.
2 comments:
오빠 한글로 된 글은 정말 느낌이 다르시네요 :)
숫자는 숫자일뿐.
그냐...
뭐가 다르까. 암튼, 숫자는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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