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상상력에 한계가 있는 것일까? 전혀 기존에 경험하고 들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을까? 선험적인 지식의 확대생산내지는 교차로 인해 생각 말고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개연성이 완전히 없는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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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불새, 기린, 키메라 등과 같은 복합적인 동물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상상속의 동물이란 단어와 연관된 이미지여서 그런 것 같다. 생각해보면, 상상이란 단어와 아주 유치하게 연관된 단어들인데 말이다. 그리곤, 곧 외계의 생명체, 그런 것으로 옮아갔다가, 곧 형체가 희미한 젤리같은 이미지가 떠올랐다가, 그럼 상상이 안된다는 것은 결국은 "無"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쉽게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불가의 영역으로 흘러드는 건 더 이상 범주를 벗어나기를 포기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여집합이 생각났다. 생각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이 아닌 여집합을 찾는 일인가? 체계적으로 자신이 생각하지 않은 것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러려면, 전체집합을 경험하지 않으면서 알아야 하는 것인데, 안다는 것은 경험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 두가지는 구별되는 것일까?
Shannon의 Information Theory에 따르면, 모든 정보는 이진법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니, 모든 아는 것을 이진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내가 아는 것의 complement는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팔이 있는 사람의 complement는 팔이 없는 사람. 하지만, 있는 것의 complement를 생각하는 것은 아는 범주에 드니까, 그러면, 없는 것의 complement를 생각해보자. 쵸가 없는 사람의 반대는 쵸가 있는 사람. 쵸가 뭘까?
쵸...
쿠랄에 추하마 쵸 따마에 기욤때라마...
아... 문장을 모두 선험해보지 않은 것으로 쓰려고 했더니,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조사도 동사로 그 아무것도 선험해보지 않은 것은 문장으로 쓸 수가 없어서, 아무런 의미도 지을 수 없다.
그러면, 부분적으로 선험한 것과 선험하지 않은 것을 섞어본다면...
그는 쵸를 가지고 있다.
복숭아 뼈에 돋아난 쵸때문에 양말 신은 것이 걸리적 거린다. 다른 개체에게 관심을 받을 필요가 없는 타성으로 태어난 그는 쵸를 통해서 이득을 볼 이유도 아무것도 없어서, 굳이 쵸를 드러내놓고 다닐 필요는 없다. 맞은 편에서는 남성과 여성으로 보이는 두 개체가 서로 밟고 있다. 그 둘 중 아무도 쵸는 없었지만, 그 둘은 곧 교배하려는 것 같다.
그는 타성이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타성. 진화의 고리에서 빗겨나간, 생식의 부담도 지지 않고, 덕분에 수명도 어느 개체보다 긴 타성이다.
타성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 그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개중에서는 타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늘어난 수명을 통해 집단의 지식 전달과 정보 보호에 힘써야 한다고 열을 올리지만, 그는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겠다. 게다가, 있지도 않은 성욕을 경험해보겠다고, 남성이나 여성의 호르몬을 암시장에서 사는 일따위에 열을 올린 적은 없다. 가끔 쵸때문에 타성인 줄 모르고, 남성이나 여성이 발등을 밟는 일이 있지만, 발꿈치를 들고 흔들어주면 이내 밟는 걸 피하고 자리를 옮긴다. 그렇게 떠나는 걸 보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익숙하다.
무릎을 맞대러 가는 중이다. 이미 세 세대를 살아온 덕분에 지난 유전세대에 일어난 일을 정리하는 일을 맡아 하고 있다. 지난 유전세대에서 이상 발현된 쵸때문에 생식풀에 특정 유전자가 포화된 게 아직도 골치다. 이대로는 타성자들이 너무 줄어서, 그처럼 정보보전을 위해서 일할 인력이 너무 줄어들게 된다. 여/남성은 생식이외에는 너무 무관심하다. 그 일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이상적인지 이상적이지 않은지 그는 모르겠다. 그는 그외 관해 생각하다가, 잠시 암시장에서 호르몬을 사볼까 까지 생각하다가 그만뒀다. 그는 괜히 수명을 줄이고 싶지 않았다.
무릎을 맞대는 곳에는 이미 다른 타성자들이 몇몇 여/남성자들과 함께 자리해 있었다. 그들은 이상발현 쵸를 가지고 있는 여/남성 중에 자원한 일부인 것 같다. 타성자 중에 쵸를 가진 이들이 서로 쵸를 맞대고 유전자 특성을 점검하고 있다.
갉류우닜밉 종인 듯 합니다.
그 떨림에 타성자 몇몇이 허리를 급히 굽히고 정리에 들어갔다. 갉류우닜밉. 내 세대 안에서는 못 본 종이다.
육십오세대 전에 발현된 적이 있었으나, 특별한 사건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까 그 타성자가 허리를 폈고 떨었다. 육십오세대 전이라 멀어서 느낌이 멀다.
다른 걸 느끼시는 분은 없으십니까?
쵸를 양쪽에 달고 있는 타성자가 떨었다.
갉류우닜밋종이란 느낌이 비슷할 것 같군요.
다른 타성자가 살짝 떨었다. 다른 타성자들이 함께 떨어주진 않았다. 아마도 발현된 적이 없거나, 특별한 사건이 있으던 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유전자를 검사당한 여/남성자들은 특별히 허리를 굽히지는 않았다. 불리워서 왔서는 보내주길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서로의 발을 밟거나 하진 않았지만, 발꿈치를 적극적으로 들어보이진 않는 걸로 봐서, 지겨워하는 것 같다.
그럼, 일단, 갉류우닜밉 종을 막는 걸로 사건을 마무리 짓도록 합시다. 다음 세대에도 재발현하면, 허리를 더 굽혀보기로 하고요.
다른 타성자들이 허리를 펴고 자리를 털자. 참가했던 여/남성자들도 반가운 기색으로 자리를 떠난다. 그들은 무척 단순하다. 그 단순함이 호르몬 생각을 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남성자가 먼저 뒤꿈치를 들고 떠났다. 함께온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
음... 써보면서 느낀 점은. 어짜피 하나하나의 개별 정보는 기존에 생각해본 것을 배제하려고 노력을 해도, 좀 더 큰 덩어리 생각은 아주 변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선험에 의존한다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의 남성자가 먼저 떠나는 장면에서, 여성자와 주인공 ("그")와의 로맨스를 그려보는 것이 어떨까 하고 잠시 생각했던 것에 자괴감을 느낀다.
생각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오늘의 사고 실험 끝.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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