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anuary 08, 2006

보드교

스키보다 보드가 배우기 힘든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도 넘어질 때 아주 심하고 아프게 넘어진다는 점일 것이다. 턴을 하는 바깥쪽 날에 힘이 걸리게 되면 온 몸이 원심력을 받아서 바깥쪽으로 크게 넘어지는데, 심하면 목뼈가 꺾이는 소리가 나면서 엉덩이, 팔, 등 등에 심한 충격을 받는다. 이렇게 넘어질 때, 온몸으로 넘어지지 않고 손을 짚으면서 넘어지면, 손목이 약한 여자들의 경우에는 부러지는 경우가 있단다. 눈물이 쏙 빠지게 아픈데, 정말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른 생각이 절로 난다. 비싼 돈 들여서 각종 장비며 스키장 이용권을 샀을텐데, 전혀 보람이 없다.

하지만, 마냥 아픔을 참고, 재차 시도하는 끈기를 보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또 아니다. 아무리,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온몸은 아직도 그 통증을 머금고 있어서, 눈비탈을 내려올 때에는 온몸이 뒤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그러면, 보드는 무게중심을 잃고 앞면이 들리게 되고, 속도는 높아지나 콘트롤은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전번보다 더 크게 넘어질 밖에. 무작정 계속 시도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방법으로 계속 넘어져서는 몸이 버틸 제간이 없다. 추운 날씨에 눈속에 계속 파묻히다보면 방수가 되는 옷을 입고 있다고 해도, 눈이 비집고 들어와 체온은 의욕과 함께 계속 떨어지고, 자신감도 함께 떨어진다.

용기가 필요한거다. 용기를 가지고, 넘어졌을 때의 아픔을 알지만, 그 아픔을 뛰어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난 왜 안될까?" 하는 마음으로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될꺼야. 뭐가 문제일까?" 하는 자신감과 호기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고 조언을 구하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내가 보드에 끌려가는 게아니라, 내가 보드를 끌고 내려가는 느낌으로 온몸을 던져야만, 비로소 보드에 내 하중을 실을 수 있고, 자유자재에 내려가는 방향과 턴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끊임 없이 도전한 연후에 성공했다는 사람들도, 아마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성공신화에 나오는 끈기있는 분들이, 끊임없이 같은 방법으로 실패를 반복한 연후에 성공했다고 믿지 않는다. 그 끊임없는 도전과 끈기도 중요하겠지만, 그와 함께 깨어 있는 마음으로 늘 배우고 익히는 정신이 있었기에 그 끊임없는 도전이 빛을 발했으리라.

이렇게 된 연후에는 보드와 꽉 낀 신발의 느낌은 사라지고, 마치 내 발로 직접 눈비탈을 밟고 내려가는 느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시야는 점점 넓어지고, 사방에서 같이 눈비탈을 내려오는 사람들을 느낄 수 있으며, 빠른 속도감 속에서도 이상하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매 순간이 짜릿하고, 매 턴이 아슬아슬하며, 그렇게 눈비탈을 내려와 리프트에 와 닿으면, 세상이 온전히 내 것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오늘도 꽈당 한 번 넘어졌다. 아주 심하게. 아주 바보같이 넘어져서 내 자신이 이해 안되고, 우습지만, 이대로 집에 돌아가서는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 차근히 일어서서 기본부터 차근차근 밟아보는거다. 자세는 낮추고, 상체는 세우고, 천천히, 즐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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